공지&후기
Seminar Bo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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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문.사.철을 함께 엮어 공부하는 절차탁마팀의 2학기 역사 세미나도 개강을 했습니다~! 이번 학기에 공부하는 이야기들의 이야기인 『천일야화』는 방대한 지역과 여러 세기에 걸쳐 지어지고, 수집되고, 편집된 책인데요. 평생을 경기도와 서울의 특정 지역 안에서 30년 남짓 살아온 저로서는 이 책의 광대한 역사성이 상상도 잘 되지 않을 뿐더러 놀랍기만 합니다. 다신교도, 유대교도, 그리스도교도, 이슬람교도, 인도인, 페르시아인, 아랍인 등등등…이 출현하는 것도 그렇고, 사산 왕조(226~651) 시기에 정리되어 퍼졌다가 압바스 왕조 때(9~10세기) 천일야화 원형이 만들어진 후 18세기부터 서양의 학자들에 의해 편집 과정을 거쳐 번역되기까지. 이 책 하나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공간들과 시간들이 중첩되어있는 것인지를 상상하다보면 민족이나 종교, 시공간을 구분하는 게 별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이를테면 신밧드 이야기는 18세기 서양의 학자들이 추가했을 것이라는 썰이 있는데, 그것의 참/거짓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그 또한 이 책에 이어지는 이야기의 일부로서 작동한다는 사실입니다. 몇 세기 지나면 누군가가 그 썰을 천일야화 안에 넣게 될지도 모를 일이지요.
그처럼 천일야화는 특정 지역이나 시기에만 국한되어있다고 보기 어려운 텍스트지만, 설화가 탄생하고 모아지는 과정에서 당시 큰 문명으로 발돋움하고 있던 이슬람에 대해서 이번에 같이 공부해보기로 했습니다. 마침 지금 한창 벌어지고 있는 중동의 분쟁을 보며 더 깊이 알고 싶고 공부해보고 싶었는데 천일야화를 계기로 이렇게 공부하게 되어 감사한 마음입니다.
메카로부터 시작된 하나-되기의 흐름
아이라 M.라피두스가 쓴 『이슬람의 세계사』 서론에서는 이슬람 출현 이전의 중동사회를, 1부에서는 코란의 계시로부터 13세기에 이르는 이슬람 문명의 형성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슬람에 문외한인 저는 전혀 몰랐던 내용들이라 낯설면서도 흥미롭게 읽었는데요. 먼저 이슬람이 출현하기 직전의 중동은 비잔틴 제국과 사산조 페르시아라는 거대한 정치·문화권으로 양분되어있었고, 그 주변부로서 아라비아가 그들보다 덜 발달된 채로 자리해 있었습니다. 제국의 세계는 농경사회로 전환한 지 오래였으나 아라비아는 기본적으로 유목사회였고, 제국의 민족들이 일신교를 믿었던 반면 아라비아는 대체로 이교도 사회였으며, 제국은 정치적으로 통합되어 있었으나 아라비아는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6세기 경 공동 성소인 카바 신전이 있는 메카가 국제교역로가 막힌 틈을 타 육상교역로로서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중동에서 가장 중요한 카라반 도시 중 하나로 떠올랐습니다. 상업적 이익으로 주가를 한창 올리고 있던 그 도시는 수많은 신들을 위계에 따라 모시는 장소이기도 했지요. 그처럼 성소를 공유하는 환경 속에서 새로운 집단적 정체성의 관념이 생겨났습니다. 메카를 비롯한 여러 순례지에서 벌어지는 연례적인 교역과 종교 축제는 아라비아 반도의 수많은 가문과 부족들을 함께 모이게 했고, 각 부족의 예배의식이 공동의 숭배의식에 초점을 맞추도록 했지요. 공동의 종교적 신조와 생활양식을 갖고 있다는 인식이 생겨나고, 유력 부족과 가문을 인정하는 분위기도 조성되었습니다. 이제까지 개별 씨족밖에 몰랐던 아라비아 베두인들에게 그것을 초월하는 집단적 정체성이 조금씩 싹트고 있던 것이지요.(58p)
또한 메카는 씨족이나 부족의 한계를 넘어설 만큼 사회가 성장하여 상당히 복잡한 정치적·경제적 유대를 형성하고 있기도 했습니다. 망명객·난민·범죄자·외국상인 등 부족민이 아닌 주민을 보유한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이기도 했으며, 부족의 연고가 없는 사람·외국인·다양한 종교적 신조·상이한 인생관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 등 각양각색의 민족과 씨족이 공존한다는 점에서 메카인은 전통적인 부족의 종교와 도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기도 했지요.(60p) 그 결과 메카에서 개인들은 조금씩 씨족의 전통에서 벗어나고 있었습니다. 씨족 구성원으로서의 자신이 아닌, 보다 자의식이 강하고 비판정신을 갖춘 개인으로 스스로를 인식하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던 거지요.
한편으로는 전혀 다른 세계관 사이의 충돌이 일어나기도 했는데, 그것은 바로 다신교와 일신교 사이의 대결이었습니다. 아라비아에는 기본적으로 고대때부터 이어져 온 다신교 신앙이 지배적이었으나, 6세기 경에는 유대인, 그리스도교 정착민, 순회 설교자와 상인 그리고 비잔틴 제국과 아비시니아의 정치적 압력 등의 외부적 요인으로 일신교가 널리 알려진 상태였습니다. 다신교와 일신교의 차이는 각자가 지향하는 바에 따라 전혀 다른 사회가 출현하게 된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는데요. 다신교도들이 무질서하고 독단적인 무수한 힘으로 이루어진 단편적인 세계밖에 볼 수 없었던 것에 비해, 일신교도들은 우주를 물질과 정신의 질서를 지배하는 유일존재에 의해 창조되고 지배되는 총체라고 믿었습니다. 그렇기에 다신교도들은 씨족이나 특정 지역이 자기의 공동체를 구성하고 그들 나름의 신을 섬기는 사회를 마음에 그렸던 반면, 일신교도들은 공동의 신앙을 통해 모든 인간이 형제가 되어 함께 구원을 추구하는 사회를 상상했습니다.(59-60p)
메카가 아라비아 사회에 정치적·경제적으로 질서를 부여하게 되면서 수천 년 간 민족·지역 간 분열의 상태에 있던 아라비아 반도에도 통일된 사회적 정체성에 대한 희망이 보이는 듯 했습니다. 거대 제국들의 계속된 압력에도 결코 중앙정부가 들어서지 않았던 아라비아 반도에 새로운 형태의 집단적 정체성이 생겨났죠. 하지만 신앙의 갈등으로 인해 통합된 도덕적·사회적 정체성은 형성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밀려들어오고 있던 일신교의 메시지는 분열의 종식을 간절히 원하는 누군가에겐 참된 신의 계시로 여겨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무함마드는 태어났고 코란을 계시받았으며, 이슬람의 예언자가 되었습니다.(61p)
아라비아가 분열되어 있는 동안에는 양쪽 거대 제국들의 위협뿐만 아니라 씨족 간 약탈과 침략으로 아라비아인들이 끊임없이 위험에 노출되며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했습니다. 메카에서 체험된 새로운 집단적 정체성은 민족, 종교, 혈연을 넘어 ‘공동의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비춰주었죠. 그러한 공동의 믿음은 단지 믿음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질적인 여러 집단을 통합하는 공통의 사회규범과 의식을 가진 하나의 아라비아 사회로 나아가게 하는 근본적인 힘이 될 것이었습니다. 평화의 염원에서 비롯된 ‘하나-되기’에 유일신은 빛을 비추어주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보면 종교라는 게 단지 믿음이나 영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와 딱 붙어있다는 게 느껴집니다. 이후에 정복 영역을 넓힌 아랍 사회에서 비아랍인들이 기득권을 갖기 위해 개종을 하기도 하고, 하나의 제국을 통치하기 위해 종족을 뛰어넘는 일체감을 만들어낼 필요 속에서 종교가 탄생하는 것도 그렇고요.
종교적·제국적 문명으로서의 이슬람
그렇다면 ‘이슬람’이란 무엇이고,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을까요? 그것을 단지 종교로만 보는 것은 이슬람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아닐 수 있습니다. 무함마드가 주축이 되어 등장한 아랍-무슬림 공동체는 가파른 기세로 중동의 여러 지역들을 정복했고, 그에 따라 중동의 도시화와 경제발전이 광범위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씨족민, 부족민에서 도시민으로 변모해가던 그들은 아랍계-비아랍계 주민 간 구분을 허물면서 서로 융화되어갔고, 점진적으로 새로운 코즈모폴리턴 공동체로 통합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처럼 도시화, 경제변화, 새로운 공동체의 형성은 강력한 신흥제국이 출현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도시와 제국의 엘리트 계층이 이슬람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종교적·제국적 문명을 낳았던 것입니다.
이슬람교도에게는 『코란』의 문장 해석, 그것을 실천에 옮기고 제도화하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그를 위해 무함마드의 모범적 언행에 대한 기록이었던 『하디스』 또한 치열하게 해석되고 참조되었죠. 코란을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수많은 학파와 그에 따른 하위 공동체가 생겨났고, 그로부터 율법·신학·신비주의를 비롯한 광범위한 종교적 연구와 관행이 발전했습니다. 그 공동체들을 움마(ummah)라고 하는데, ‘이슬람’은 종교적 개념뿐만 아니라 바로 그런 창조적 영감의 진원지인 공동체 움마를 두루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143p) 움마에서는 코란의 해석에 따른 윤리가 인간 생활의 모든 국면에 적용되었습니다. 개개인 각자의 실존도, 가정생활도, 사회에서 공적으로 타인과 맺는 관계도 모두 종교와 연관되었지요. 정옥샘이 말씀해주신 것처럼 모스크를 중심으로 도시가 구성되고, 메카 방향의 화살표가 모든 길에 있고, 아잔(이슬람의 예배 알람) 소리가 들리는 데까지가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세계.
엘리트 집단이 이끈 문명은 곳곳의 움마에서 다양한 문화적 표현으로 꽃피게 되었습니다. 미술·건축·철학·과학·신학·법학·신비주의·코란 해석학 등의 발전을 일으켰지요. 결국 이 모든 것이 이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거대한 문명의 탄생. 『천일야화』에는 이러한 이슬람이 한창 발흥하는 시공간과 그 주변부 문명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담겨있습니다. 그 속에서 당시 문명의 어떤 모습을 발견해볼 수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ㅎㅎ 후기가 늦어지는 바람에 세미나 기억이 희미해져 책 내용이 많이 들어갔네요;_; 내일 뵙겠습니다~!
유럽 중심으로 역사 서술에서 조연으로 등장했다 사라지던 이슬람의 역사를 가운데 두고 살펴보게 되었네요. 역사를 공부하면서 중동, 서남아시아, 이슬람, 아랍, 페르시아 등 동일한 언어처럼 사용됐던 말들이 조금은 다르게 들립니다. 어떤 말들은 그것의 경계를 명확히 알고 있다고 여기기도 했는데 오히려 실체가 없는 말이란 생각도 합니다. 호호미의 말처럼 이슬람을 종교와 더불어 문명으로서 감각한다는 것은 무엇일지 궁금해지네요.
'믿음이나 영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와 함께 간다'는 것을 중요한 특징으로 짚어 주셨네요. 이슬람의 특징은 종교와 법과 윤리가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이죠. 삶의 실천 자체가 영성이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지요?! 시간이 지난 덕분에 더 꼼꼼한 후기를 보게 되었네요. 잘 읽었어요~~